오래전 일이다. 모두가 잠들었을 늦은 밤, 더 이상은 이렇게 못살겠다고 비장한 결심으로 짐을 꾸렸다. 술에 취해 코를 골며 잠들어 있는 발렌티노를 매서운 눈초리를 쏘아 본 후 조용히 일어났다. 등에는 아직 돌 안 된 둘째아이를 업고 앞에는 잠이 든 3살 아이를 안으니 더 이상 다른 건 챙길 여유가 없었다.
'아이 하나 더 있었으면 도망도 못가겠네' 실소가 나왔다. 이런 심각한 상황에서 문득 머리를 스친 게 우습게도 선녀와 나무꾼에 등장하는 사슴의 말 이였다. "선녀가 아이 셋을 낳을 때까지는 절대 날개옷을 주시면 안돼요."
어릴 적에는 아무 생각 없었는데 이런 깊은 뜻이 있었구나. 새삼 사슴의 지혜에 감탄했다. 구전동화가 역시 허투루 지은 게 아니였다. 선녀는 옷이라도 빼앗겨 어쩔 수 없이 살았다지만 난 내 손으로 선녀옷 버리고 혼인한 것인데 무얼 원망하고 도망쳐버리려는 것인가.
나는 참 어리석었다. 학교 공부나 열심히 하며 쌓여지는 지식에 도취되어 살았지 지혜는 없었다. 혼인을 하면 겨울이 봄으로 바뀌는 줄 알았다. 그저 시간만 지나면 겨울에서 봄이 저절로 되는 줄 알았다. 그러나 겨울 매서운 바람 앞에 겨울나무는 아무것도 안한 게 아니였다. 나무에 청진기를 대어보면 물을 빨대처럼 빨아들이는 폭풍우 같은 소리가 들린다. 그렇게 나무는 열심히 봄을 만들어가고 있었다.
나는 참 몰랐다. 봄은 내가 만들어 가야 되는 것이였다. 나는 속이 꽁꽁 얼어붙은 겨울나무가 되어 왜 봄을 나에게 주지 않냐고, 원망하며 울고 질질 짜다 지쳐있었다. 그러다 혹시 다른 곳에 봄이 있을지 모른다고 두 아이 끌어안고 떠나려고 했던 것이다.
고맙게도 하느님은 나에게 사슴이 되어 힘들 때 길을 찾아 주셨다. 바로 주말 ME를 통해 봄 만드는 방법을 배워가게 되었다. 차츰 아이들과 발렌티노에게 봄 같은 엄마, 아내가 되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다. 내 속에 아직도 남아있는 얼음 조각이 한 번씩 날카롭게 날 찌르고 가족들을 찌를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ME에서 배운 대화법으로 조금씩 녹이는 게 다였다. 그렇지만 그런 작은 노력들이 모여 봄기운으로 퍼져 나갔다. 점점 새순이 돋아나는 듯한 가족을 보며 새삼 행복을 느낀다. 물론 아직 부족함이 많은 나라서, 한 번씩 내 날개옷 찾겠다고 소리 지르고 싸우기도 한다. 사실 이젠 아이가 셋이라 소용이 없긴 하지만 말이다.
주말 ME는 나에게 날개옷보다 더 귀한 선물을 주었다. 내가 머무는 곳, 내가 머물러야 하는 곳, 우리 가정이 천국이 될 수 있게 날개가 되어 주었다. 이렇게 우리 가정에 봄을 가져올 수 있게 지혜를 주신 하느님 감사합니다.
2022년 6월호 금빛신문 기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