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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것을 미루지 말자(금빛신문 7월호)
벨다
 
2022-07-26

사랑하는 것을 미루지 말자

 

20212월 우리 부부는 혼인 30주년을 맞았다. 코로나로 인해 불편했지만 오랫동안 생각해온 작은 이벤트를 가졌다. 신혼여행지였던 제주도를 찾아 30년 전에 입었던 커플티를 꺼내 입고 빛 바랜 기념사진 속에 남아 있는 그 장소에서 그때의 포즈로 사진을 찍으며 추억에 젖었다. 30년이라는 세월이 벨다와 나의 모습을 많이 바꾸어 놓았지만 마음만은 늘 그 시간에 머물러 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40년이 넘는 교직생활을 마무리하고 처음 맞이하는 2022년 기념일에는 그동안 직장을 핑계로 미뤄왔던 장기간 성지 순례를 포함한 더 멋진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우리 부부의 혼인 31주년은 대학병원 응급실에서 보냈다. 다행히 며칠 동안의 입원으로 벨다의 건강은 회복이 되었지만 우리들이 품었던 계획들은 허무하게 무너졌다.

 

벨다를 처음 본 것은 1982년 가톨릭 동아리 신입생 환영회 자리였기 때문에 정확히 40년 전의 일이다. 그 당시 동성동본간 혼인이 법으로 금지되어 있었기 때문에 오누이 같은 선후배로 다정하게 지내자던 우리들의 다짐은 실현 가능한 것이 아니었다. 금지된 사랑은 더 애틋했고 세상의 모든 것을 다 버리는 한이 있어도 우리의 사랑을 지키려는 마음은 절실했다. 양가 부모님의 완강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부부가 되었다. 사랑에 빠지는 것은 아무런 준비 없이 가능했지만, 혼인이라는 절차가 우리 두 사람을 사랑안에 머무를 수 있도록 보장해 주지는 못했다. 부부가 되어 살아가는 것은 한 번도 경험해 본 적이 없는 새로운 길이었다. 연애시절 서로의 마음에 귀 기울이던 대화의 방식은 상대를 설득하기 위한 도구가 되어 갈등만 증폭시켰다. 연년생의 두 아이를 키우며 직장생활을 하는 벨다를 보면서도 그것은 아내로서의 당연한 역할이고 나는 직장에서 교회에서 인정받기 위해 가정에 소홀하면서도 가장으로서 불가피하다는 고집으로 살았다. 우리는 서로 각자의 일에 최선을 다하고 있었고, 마음속에는 서로를 사랑하는 마음도 변함이 없었다. 하지만 알 수 없는 외로움과 서로에 대한 실망으로 깊은 터널 속에 갇혀 있었고 헤어나오는 길은 보이지 않았다. 숱한 난관에도 불구하고 죽음이 서로를 갈라놓을 때까지 서로 존경하고 사랑하겠다고 하느님 앞에서 서약했지만 우리 둘은 혼인생활을 지속할 힘이 고갈되어 가고 있었던 것이다. 혼인 8년째 되던 19998,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으로 ME주말을 체험하게 되면서 머리의 회로가 바뀌는 놀라운 깨달음을 얻었다.

되돌아보면 우리들은 부부로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 지를 배우지도 못한 채 사랑하는 마음만으로 부부가 되었다. ‘동화에서 주인공의 혼인은 가장 비극적 결말이라는 어떤 동화작가의 말처럼 혼인은 사랑의 결실이 아니라 사랑의 여정의 출발인 것이다. 아무런 준비 없어도 살을 맞대고 살다보면 부부의 사랑이 유지되는 줄 알았다. 부부로서 사랑안에 머무르기 위하여 매순간 절실한 마음으로 사랑을 결심해야 하는 것을 모르고 그냥 살았던 것이 얼마나 무모했는지 ME주말을 통해 뼈저리게 느꼈다. 내가 남편으로서 벨다에게 많은 아픔을 주었던 것은 나의 의도가 선하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다. 나의 마음을 벨다에게 전하는 방법이 서툴렀기 때문이다. 그것은 내가 성장한 환경 즉 부모님과 친척들 그리고 이웃을 포함한 사회의 영향도 있었을 것이다. 내가 누군가의 영향을 받았던 것처럼 누군가는 우리 부부로부터 영향을 받고 있다. 자녀를 가장 사랑하는 방법은 부모가 서로 사랑하면서 살아가는 것을 보여 주는 것이다. ‘우리의 삶은 모든 것이 성소(聖召).’ 자식으로, 남편과 아내로, 부모로,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하느님의 영광을 세상에 드러내어 선한 영향력을 퍼뜨리도록 부르심을 받았다. 퇴임 후 혹은 경제적으로 안정될 때까지 참고 기다리자고 쉽게 말하지만 사랑은 어떤 조건이 충족될 때 완성품으로 툭 떨어지지 않는다. 사랑은 함께 키워가는 과정인 것이다. ‘지금 사랑해야 할 사람을 사랑하고 있습니까?’ 사랑으로 가는 길은 지금 당장 사랑을 행동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내 배우자가 사랑받고 있다는 것을 느낄 때까지.                                                   

 사랑하는 것을 미루면 사랑할 수 있는 기회가 영영 오지 않을지도 모른다.

 2022.6월 어느 날 대구ME 박경현 프란치스코박영자 벨다 부부가

[첨부파일]
댓글
김성래 신부
 
2022-07-26 22:1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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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치스코, 요즘 열심히 사랑하는 모습이 참 감동적입니다. 늦었다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지금이 가장 빠른 때이기도 합니다. 앞으로도 '사랑을 미루지 말도록 강권하는 전도사'로 잘 살아주십시오^^
장진숙
 
2022-07-27 17:1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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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에 빠지는 것은 아무런 준비 없이 가능했지만, 혼인이라는 절차가 우리 두 사람을 사랑안에 머무를 수 있도록 보장해 주지는 못했다.라는 말씀이 정말 가슴에 와 닿았습니다. 저희 본당 카페 엠이란에 자랑스럽게 올려놓았습니다.ㅎ 두 분 건강이 특히 벨다 형수님 건강이 안정적이지 못해 안타까운 마음 금할 수 없습니다ㅠ 두 분의 영육간 건강을 위해 기도드립니다.(변명철 바오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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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9-13 07:3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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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님 진솔하고 먹먹한 글로 감동을 주심에 감사합니다^^ 살아온 시간들로 아낌없이 나누어주신 지혜를 되새기며 실천해보겠습니다. ^^